AI는 진짜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AI 버블의 역사적 징후

1800년대 영국은 철도에 미쳐 있었다.
얼마나 놀라웠을까? 어제까지만 해도 런던에서 맨체스터까지 며칠이 걸리던 세상이었다. 말이 지치면 쉬어야 했고, 비가 오면 길은 진흙탕이 됐다. 물건을 운반하는 비용은 비쌌고, 사람들은 평생 자기 마을 반경 수십 킬로미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쇳덩이 괴물이 등장했다.
기차는 증기를 내뿜으며 시속 40km, 50km로 달렸다. 오늘날 자동차 속도에 비하면 느리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거의 순간이동에 가까웠다. 런던에서 보낸 편지가 더 빨리 도착했고, 공장에서 만든 물건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먼 도시로 여행하기 시작했다. 세상이 갑자기 작아졌다. 철도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신문에는 철도 이야기만 나왔다.
정치인들은 철도를 외쳤고, 사업가들은 철도 회사를 만들었다. 투자자들은 철도 주식을 사기 위해 몰려들었다. 좋은 노선이 발견되면 여러 회사가 동시에 몰려가 선로를 깔았다. 한 노선을 두고 경쟁 회사들이 나란히 철도를 건설하는 일도 벌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스운 장면이다. 서울에서 부산 가는 KTX 선로를 다섯 회사가 따로 까는 셈이니까.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모두가 확신하고 있었다. 철도는 진짜였기 때문이다.

1. 진짜 기술이 만들어내는 과잉투자의 덫

정말 철도는 영국을 바꿨다.
산업혁명을 완성했고, 경제를 성장시켰으며, 이후 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다만 철도가 세상을 바꾸기 전에 먼저 사라진 것이 있었다. 철도 회사들이었다.

1840년대 중반, 의회에 제출되어 통과된 철도 건설 계획 노선의 총길이는 무려 15,000km에 달했다. 이는 영국의 좁은 국토 면적을 고려할 때, 온 나라를 무쇠 궤도로 촘촘하게 묶어서 도배하는 수준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많은 철도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상당수 노선은 완공되지 못했다. 어떤 곳은 땅만 파헤쳐졌고, 어떤 곳은 선로만 깔린 채 버려졌다. 회사는 파산했고 투자자들은 돈을 잃었다. 하지만 철도는 남았다. 망한 회사의 자산은 헐값에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갔고, 그 선로 위로 기차는 계속 달렸다.

인터넷을 처음 접했을 때도 비슷했다.
모뎀 소리가 울리고, 하이텔과 나우누리에 접속하던 시절이었다. 채팅을 하고, 동호회를 만들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도 사람들은 세상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바뀌었다. 인터넷 기업들에 돈이 몰렸고, 통신망이 전 세계에 깔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버블이 터졌다.
수많은 기업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이 경쟁적으로 땅속에 묻어놓은 광케이블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의 상당 부분은 그 시절 과잉투자의 유산 위에 서 있다. 철도도 진짜였다. 인터넷도 진짜였다.

철도 버블과 AI 투자 버블을 비교한 이미지. 19세기 철도 광풍과 현대 AI 데이터센터 투자 열풍의 공통점을 표현한 대표 이미지.


2. 1,000조 원의 판돈과 AI 버블의 서막

오늘날의 AI 버블 징후 역시 본질은 같다.
AI도 진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요즘 어디를 가도 AI 이야기다. 뉴스도 AI. 기업도 AI. 투자자도 AI. 180년 전 영국 사람들이 철도를 이야기하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올해 빅테크들의 AI 인프라 투자 규모는 약 6,9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돈으로 1,000조 원이 넘는다. 대한민국 1년 예산보다 큰 돈이다. 오직 데이터센터를 짓고, GPU를 사고, 전력을 확보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다. 숫자가 너무 커서 감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넷플릭스를 떠올려봤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수억 명이 이용하는 서비스다. 영화와 드라마 산업을 통째로 바꿔놓은 기업이다. 그런 넷플릭스가 1년에 버는 순이익은 약 100억 달러다. 엄청난 돈이다. 그런데 올해 AI 인프라 투자 규모는 약 6,900억 달러다. 넷플릭스가 약 70년 동안 벌어야 하는 금액이다. 갑자기 숫자가 조금 무겁게 느껴진다.

철도 이야기가 다시 떠오른다.
사람들은 철도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바꿨다. 하지만 그 믿음이 너무 커진 나머지, 철도가 벌어들일 돈보다 먼저 철도에 들어가는 돈이 더 커져버렸다. 지금 AI도 비슷한 질문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3. 닷컴 버블의 재현, 생존을 위한 IPO 러시

모두가 AI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믿는다.
나 역시 동의한다. 하지만 의문점은 있다. 도대체 이 많은 돈을 어떻게 회수할까. 넷플릭스 같은 기업이 70년 동안 벌어야 하는 돈이 올해 단 1년 만에 AI 인프라에 투자된다. 그런데 투자는 올해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더 많은 데이터센터가 필요하다.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더 많은 반도체가 필요하다. AI기업들은 앞으로 더 많은 돈을 투자할 거라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 AI 산업에는 엄청난 돈이 몰리고 있다.
기업들은 투자금을 유치하고, 사모펀드는 돈을 빌려주고, 시장은 더 큰 성장을 기대한다. 아직 벌지 않은 미래의 돈이 오늘의 투자금으로 바뀌고 있다. 그 돈으로 반도체를 사고 데이터센터를 짓고, 전력을 확보한다. 그리고 다시 더 큰 데이터센터를 계획한다. 어딘가 익숙한 풍경이다. 철도 회사들도 그랬다. 닷컴 기업들도 그랬다. 기술은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고, 확신은 과잉투자를 만든다.

그리고 과잉투자는 언제나 버블을 만든다.
하지만 버블은 생각보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철도 버블이 없었다면 영국은 그렇게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닷컴 버블이 없었다면 지금의 초고속 인터넷 시대도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AI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버블은 미래를 현재로 끌어온다. 20년 걸릴 일을 5년 만에 해버린다. 그래서 버블은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이다.

투자자 입장에서 버블은 엄청난 기회이기도 하다.
실제로 큰 부는 이런 시기에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미래를 의심할 때보다, 미래를 확신하기 시작할 때 자산 가격은 더 빠르게 움직인다. 문제는 버블이 꺼지는 순간이다. 버블은 천천히 부풀지 않는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커진다.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갑자기 꺼진다. 그래서 어렵다.

지금 AI 산업은 역설적인 위치에 있다.
반도체 기업들은 역대급 실적을 내고 있고, 데이터센터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AI 사용자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버블은 가장 뜨거울 때 가장 설득력이 있다. 모두가 같은 미래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의심은 점점 어려워진다. 하지만 정작 AI 서비스를 만드는 오픈AI와 앤트로픽 같은 기업들은 여전히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금리가 오르고 자금줄이 마르기 시작하자, 기업들은 일제히 주식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절대로 상장하지 않겠다던 스페이스X가 약속을 깨고 6월 상장을 예고했고, 오픈AI와 앤트로픽 역시 올해 안 상장을 서두르고 있으며, 구글마저 추가 주식 발행을 예고했다.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직전, 돈이 메마른 벤처기업들이 무더기로 IPO를 신청하며 시장의 현금을 집어삼키던 잔혹한 풍경이 26년 만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문을 두드리는 주식시장은 어쩌면 생존을 위한 마지막 현금 수혈처일지도 모른다.

AI는 세상을 바꿀까?
아마 그럴 것이다. 철도가 그랬고, 인터넷도 그랬으니까. 다만 역사는 한 가지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새로운 인프라가 세상을 바꾸는 과정은 생각보다 매끄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철도도 수많은 회사의 파산 위에서 완성됐다. 인터넷도 수많은 닷컴 기업의 실패 위에서 꽃을 피웠다. 투자자들이 상상했던 미래는 대부분 맞았다. 다만 그 미래가 찾아오기까지의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거칠었다.

AI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지금의 1,000조 원의 투자가 모두 정답은 아닐 것이다. 어떤 데이터센터 투자는 잘못될 수도 있고, 어떤 기업은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남겨진 인프라는 결국 다음 시대의 기반이 될 가능성이 높다.

철도도 진짜였다.
인터넷도 진짜였다.
그리고 AI도 진짜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아슬아슬해 보인다.

가장 위험한 말은 ‘이번에는 다르다’가 아니다.
‘이번에는 다르지만, 그래서 가격도 상관없다’가 위험하다.
-하워드 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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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자료:
영국 철도 광풍
닷컴 버블
넷플릭스 IR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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