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트럼프와 네타냐후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듭니다.
도대체 전쟁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도대체 왜 여기까지 왔느냐고. 왜 중동은 또다시 불타고 있느냐고. 뉴스는 늘 결과부터 보여줍니다. 미사일이 날아가고, 건물이 무너지고, 검은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릅니다.
하지만 전쟁은 대개 미사일이 날아간 순간 시작되지 않습니다. 전쟁은 그보다 훨씬 먼저, 어떤 지도자의 머릿속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번 이란 전쟁의 중심에는 두 남자가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그리고 베냐민 네타냐후.
세상은 종종 국가와 국가가 싸운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국가 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대개 아주 인간적인 이유로 움직입니다.
두려움.
욕망.
허영.
그리고 생존.
살아남아야 하는 남자, 네타냐후
베냐민 네타냐후는 이상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는 생존주의자에 가깝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오래 권력을 쥔 지도자라는 사실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살아남았다는 것은 누구보다 정치의 잔혹함을 잘 안다는 뜻입니다.
그는 알고 있습니다. 평화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지도자를 평가하지만, 위기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지도자에게 매달린다는 것을. 어쩌면 그래서 그는 늘 긴장을 다루는 데 능숙해 보입니다.
외부의 적이 존재할 때, 국민은 내부 문제를 잠시 잊습니다.
비판은 줄어들고, 질문은 멈추며,
사람들은 하나의 깃발 아래 모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를 오래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보다 잘 아는 사실입니다.
일부에서는 그의 강경한 대외정책이 국내 정치적 부담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기도 합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런 평가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그를 향한 세상의 시선을 보여줍니다.
네타냐후를 보고 있으면
마키아벨리가 떠오릅니다.
사랑받는 군주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군주가
더 오래 살아남는다고 믿었던 사람.
네타냐후는
인기보다 권력을,
이상보다 생존을 먼저 배우며 여기까지 온 사람처럼 보입니다.
2026년 초, 사법 리스크와 국내적 비판에 직면했던 그에게
전쟁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선택지’였을지도 모릅니다.

왕이 되고 싶은 남자, 트럼프
트럼프는 조금 다릅니다.
그는 정치인이라기보다 사업가에 가깝습니다.
그에게 세상은
신념의 공간이 아니라 거래의 공간입니다.
무엇이 옳은가보다
무엇이 이익인가를 먼저 묻습니다.
그에게 외교는
복잡한 국제 질서가 아니라
거대한 협상 테이블일 뿐입니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며,
누가 먼저 고개를 숙이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는
제도보다 직감을 믿고,
절차보다 자신을 믿습니다.
회의보다 명령을 좋아하고,
토론보다 충성을 좋아합니다.
가끔 그를 보고 있으면
대통령이라기보다 왕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민주주의 지도자라기보다
왕관 없는 군주처럼 말입니다.

트럼프를 보면
루이 14세가 떠오릅니다.
루이 14세가 “짐이 곧 국가다”라고 믿었듯,
트럼프는 자신의 결단이 곧 세계의 질서라고 믿습니다.
그는 평화를 사랑한다기보다 패배를 싫어하는 사람이며,
강해 보이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판을 흔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권력은 왜 갈등을 필요로 하는가
어쩌면 이 둘은
생각보다 많이 닮았습니다.
둘 다
권력을 오래 쥐어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권력을 오래 쥔 사람은
대개 비슷해집니다.
처음에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권력을 잡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흔들기 시작합니다.
권력을 오래 가진 사람은
평화를 마냥 반기지 않습니다.
평화가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여유를 찾고,
여유가 생길수록 질문을 시작하니까요.
왜 저 사람이 저 자리에 있지.
왜 계속 저 사람이어야 하지.
다른 사람이 해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어떤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갈등을 만들어냅니다.
밖으로는 적을 만들고,
안으로는 편을 가릅니다.
사람들이 불안할수록
강한 지도자를 찾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반복해서 보여주었습니다.
갈등을 가장 잘 이용하는 사람은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가 끝나지 않게 만드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전쟁은
그 오래된 갈등의 형태 중 하나입니다.
베트남 전쟁은 20년 가까이 이어졌고,
이라크 전쟁은 8년을 넘겼으며,
100년 전쟁은 이름조차 농담처럼 백 년을 채웠습니다.
사람들은 늘 전쟁을 시작할 때
곧 끝날 것처럼 말하지만,
이상하게도
갈등은 시작보다 끝맺음이 훨씬 어렵습니다.
2026년 4월, 위험한 휴전의 이면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연장선 위에 서 있습니다.
39일간의 격전 끝에
2026년 4월 7일,
2주간의 임시 휴전이 발표되었습니다.
시장은 안도했고,
애널리스트들은 다시 숫자를 수정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질문은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진짜 평화일까요.
아니면 다음 움직임을 위한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일까요.
트럼프는 여기서 멈출까요.
네타냐후는 여기서 만족할까요.
그들의 욕망이 바뀌지 않았다면,
휴전은 끝이 아니라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때때로
전쟁은 가장 조용한 순간에
다시 시작되곤 합니다.
그래서 투자자는 사람을 봐야 한다
투자자는 숫자를 봅니다.
금리와 환율을 보고,
실적과 차트를 보고,
뉴스와 지표를 읽습니다.
물론 그것들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숫자는
이미 일어난 일을 보여줄 뿐입니다.
세상이 어디로 움직일지는
대개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 결정합니다.
한 사람의 판단이 정책을 만들고,
한 사람의 욕망이 전쟁을 만들며,
한 사람의 두려움이 시장을 흔듭니다.
그래서 때로 투자자는
재무제표보다 사람을 먼저 봐야 합니다.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는지,
그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것을 읽지 못하면
뉴스는 늘 갑작스럽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대부분의 사건은 갑자기 벌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의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고,
욕망의 방향도 쉽게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시장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읽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차트 뒤에 있는 사람,
정책 뒤에 있는 사람,
그리고 전쟁 뒤에 있는 사람.
세상은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가끔은 단 한 사람의 손끝에서 방향을 틀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 역시
어쩌면 그 연장선 위에 있을 뿐입니다.
지도자의 욕망이 시장의 방향을 바꿀 때,
그 위에 올라탈지 말지는 결국 우리 자신의 욕망에 달려 있습니다.
같이 보면 좋은 글:
호르무즈 해협이 열려도, 끝난 것은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부과 법안 통과: 세계화가 끝난 자리에 청구된 각자도생의 비용
조선주 전망: 교환사채(EB) 발행, 현대중공업 폭락, 하지만 2027년은 이미 채워져 있다
Fomoless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