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란 의회가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부과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는 수십 년간 미국이 지켜온 ‘공짜 바다’의 시대가 저물고, 각 국가가 생존을 위해 막대한 안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지정학적 리스크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상징합니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 경제는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유례없는 풍요를 누렸습니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며 전 세계 바닷길을 안전한 공공재로 개방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시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미국은 유럽과 거리를 두고, 중동에서 발을 빼며, 오직 자국 이익(관세와 보호무역)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공백을 틈타 터져 나온 중동의 총성은 우리에게 한 가지 냉혹한 진실을 말해줍니다. “이제 공짜 바다는 없다”는 것입니다.
1. 이란 의회의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부과 결정: 인플레이션의 새로운 도화선
이란은 더 이상 전면전이라는 극단적 선택에만 매달리지 않습니다. 대신 이란 의회는 최근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부과‘ 법안을 통과시키며, 전 세계가 공공재로 사용하던 국제 해상로를 ‘사유화’하겠다는 선언을 마쳤습니다. 이는 총칼을 앞세운 전쟁보다 훨씬 교묘하고 강력한 경제적 인질극입니다.
이란은 전쟁이 아니라 ‘길’을 인질로 잡고 있습니다. 폭 33km의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의 21%, LNG의 20%가 지나는 동맥입니다. 이란은 이곳을 완전히 막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언제든 흔들 수 있다”는 신호만으로 글로벌 에너지 가격에 ‘지정학적 통행료’를 매깁니다. 그 결과 60달러대에 머물던 유가는 이제 100달러를 넘어섰고, 이는 전 세계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며 글로벌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한때 “석기시대로 돌아가게 하겠다”며 호언장담하던 미국이 정작 이란의 석유 시설을 파괴하지 못하는 이유는 군사적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지금의 해협 불안만으로도 유가가 요동치는데, 이란의 시설이 파괴되고 그 보복으로 주변국 석유 시설까지 타격을 입는다면 유가는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 폭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쟁이 끝나더라도 그 상처를 복구하는 데는 상상할 수 없는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입니다.
2. 걸프 국가들의 딜레마: “죽이려면 확실히 죽여라”
주변 아랍 국가들이 이란의 도발에도 반격을 주저하는 이유는 그들의 경제 구조가 ‘유리성’과 같기 때문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군사력보다 에너지 수출 인프라의 타격을 더 두려워합니다. 정유 시설, 수출 터미널, 해상 물류망이 하나로 연결된 이들에게 전면전은 곧 국가 수익 구조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과거 사우디가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 “이란 정권이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공격하라”고 촉구했던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어설픈 타격 후 이란을 화나게만 한 상태로 미군이 철수하면, 그 보복의 화살은 고스란히 사우디의 석유 시설로 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파괴하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화나게 하지 마라.” 이것이 현재 아랍 국가들이 이란으로부터 미시일과 드론으로 공격을 받으면서도 인내하는 냉혹한 이유입니다. 실제로 이란은 이번 전쟁에서 수조 원짜리 항모 전단 없이도, 저렴한 자폭 드론과 미사일(비대칭 전력)만으로 해협의 안전을 위협하며 호르무즈 해협을 가진 자의 위험성만을 증명해 냈습니다.
3. 미국의 퇴장: 세계화에서 각자도생으로
현재 미국은 과거의 절대적인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습니다. 2026년 발표된 미국의 새로운 국방 전략(NDS)은 본토 방어와 서반구 우선주의를 강조하며, 중동의 해상 안보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방관자적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이 더 이상 전 세계 바닷길을 공짜로 지켜주는 ‘세계의 경찰’ 역할을 수행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미국이 발을 빼는 이 공백 속에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권한을 ‘사유화’하고 있습니다. 세계화가 선물했던 ‘저물가·고성장’의 시대는 가고, 각자도생의 ‘고비용·저성장’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4. 중국의 학습: 대만 통합을 위한 실전 시뮬레이션
미국이 경제적 출혈을 두려워해 중동에서 주저하는 모습은, 대만 통합을 노리는 중국에게 결정적인 교훈을 줍니다. 중국은 이란을 보며 확신했을 것입니다. “미국은 경제적 파국 앞에서는 대만 방어도 포기할 수 있다.”
전 세계 컨테이너선의 50%가 지나는 대만해협과 물동량의 33%가 흐르는 남중국해는 중국에게 단순한 비즈니스 무대가 아닙니다. 이란처럼 이 통로들에 대해 통행권을 쥐게 된다면, 중국은 전면전 없이도 대만의 생명선을 끊고 미국의 개입 의지를 꺾을 수 있습니다. 이란의 성공은 중국에게 대만 통합을 위한 완벽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5. 고비용 시대를 이기는 새로운 혈관: IMEC
공짜 바다가 사라진 시대, 세계는 이제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서라도 새로운 ‘안전한 길’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IMEC(인도-중동-유럽 경제 회랑)이 그 실체입니다.
인도에서 UAE, 사우디를 거쳐 이스라엘 하이파 항구까지 철도로 연결하는 이 거대 프로젝트는 이란의 위협이 닿지 않는 내륙을 관통합니다. 해로보다 시간은 40% 단축되지만, 건설 비용은 막대합니다. 하지만 각자도생의 시대에 이 ‘안보 비용’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리스크가 상수가 된 세상에서 ‘가장 빠른 길’보다 ‘가장 확실한 길’이 더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효율의 시대에서 생존의 시대로
우리는 지금 세계 경제의 판도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지점에 서 있습니다. 에너지와 물류는 더 이상 효율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제 투자의 나침반은 지도상의 최단 거리가 아니라, 각자도생의 리스크를 방어할 수 있는 새로운 인프라와 공급망을 설계하는 기업들로 향해야 합니다.
공짜 바다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누가 더 비싼 ‘안보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구조를 만드느냐가 승패를 가를 것입니다. 지정학적 위기는 일시적인 소음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할 새로운 시대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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